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지 걸 (문단 편집) == 배경 ==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린든 B.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받는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1년 앞둔 인기 있는 현직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으며 그 반작용으로 존슨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한편, [[공화당(미국)|공화당]]에서는 온건보수파의 거두였던 뉴욕주지사 [[넬슨 록펠러]]가 대통령 후보로 가장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거를 1년 앞두고 록펠러가 연하의 여비서와 외도가 나 부인과 이혼을 하고 비서와 재혼하는 섹스스캔들이 일어나며 도덕성을 중시하는 보수 유권자 사이에서 록펠러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지금이어도 크게 욕먹을 사안이지만 이때는 68혁명 이전이라 더더욱 성적으로 보수적인 관념이 강했다. 오죽하면 케네디와 존슨이 록펠러의 재혼 소식을 듣고 "록펠러가 1964년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건 맞냐"라며 비웃었을 정도이다.] 거기다, 존슨 대통령의 재선 확률이 높아지자 [[리처드 닉슨]]을 비롯한 대다수의 대권주자들이 출마를 포기한 상태였다. 이로 인해 공화당의 1964년 예비선거 및 전당대회에서 젊은 상원의원 [[배리 골드워터]]가 록펠러를 꺾고 대통령 후보 공천권을 받아내는 이변을 일으킨다. 배리 골드워터는 평소 "크렘린에 미사일을 떨어트리고 싶다" "소형 핵무기를 일반 폭격 무기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자유를 위해 핵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라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었으며, 전당대회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도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는 연설을 해 온건파 공화당원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특히 1년 전 [[쿠바 핵 위기]]를 겪었던 데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축출되고 [[중소결렬|중국과 소련 간의 관계가 경직되는 한편]] 선거 직전에는 통킹만 사건이 터져 [[베트남 전쟁]]까지 일어나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대중에게 확산된 상태였기에 골드워터는 더욱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선거 운동이 진행되고 [[로버트 F. 케네디]] 법무장관과 존슨 대통령의 불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로버트 케네디가 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이미 부통령 시절부터 존슨은 로버트 케네디를 정치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매우 싫어했고, 대신 자신의 측근이었던 험프리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며 케네디 지지자들의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골수 케네디 지지층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또 강경한 흑인 민권운동의 옹호자 [[휴버트 험프리]]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됨에 따라 민권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은 남부가 골드워터를 지지하면서 선거전 초반 10%대에 머물렀던 골드워터의 지지율은 급격히 상승해 30%대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존슨 캠프는 위기에 빠졌으며,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핵 사용을 긍정하는 골드워터 후보의 태도를 역이용하여 네거티브 광고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이 데이지 걸 광고였다. 당시 텔레비전 광고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도일 데인 번바크 사의 토니 슈워츠가 이 광고를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